난 왜 이렇게 술을 좋아할까, 심지어 많이 마시지도 못하는데 말이다. 유전인듯.. 술에 절어사는 아버지를 그렇게 혐오했으나 나도 별수없이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다. 절어서 사는건 아니지만 다행히.. (절어서.. 사는건가?)
제주 번화가라면 이런 바 쯤이야 널렸겠지만, 표선에 입성한 그 새벽부터 여긴 뭐가 많이 없겠구나 짐작은 했다. 마침 혼술하기 괜찮아보이는 펍은 쉬는날이고..^_^ 숙소에서 버스타고 내려서야 알게된 사실. 버스정류장에서 급하게 찾아낸 곳 치고는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진짜 만족한 곳. 다음날 출근 아니었으면 더 오래 더 많이!!! 먹을 수 있었을텐데 아쉬움만 남은 곳이다.
제주라듸오라는 이름이 사알짝 억지?? (이런 표현이 맞을까;; 안땡기는 이름 ㅋㅋ)스럽긴 한데 들어가보면 갬성 무엇임인 느낌. 간결한 레트로풍의 서체가 귀여운 간판이다.
조용히 마셔달라는 입장 안내문이 있어서 혼술하러 온 나는 더더욱 신나서 입장하게 되었다. 어차피 같이 떠들 사람두 없는데 모~
오픈 후 한시간 가량 지난 시간이었는데 내가 첫 손님인듯 보인다. 사장님은 여기서 장사하신지 얼마나 되셨으려나?
내부가 상당히 넓고 프라이빗한 공간도 있어서 삼삼오오 자기네들끼리 수다떨러오기에도 좋을듯하다. 물론 혼술하러와도 전혀 부담느껴지지 않음.
여기저기 어릴때 아빠가 다니던 공장 사무실에 있었던 아이템들이 눈에 띤다. 초등학교 교무실이나 행정실에서 봤던 것 같은 캐비닛이라든가, 교장실에 있었던 난이라든가.
바테이블 위에 올려진 고무 패드 ㅋㅋ 어릴 때 저거 하나 사달란 말을 못해서 신문지 위에 대고 죽죽 칼질했던 기억이 난다.
어둑어둑한 조명, 테이블간격, 인테리어 컨셉 전부 좋다. 여기 못 갔으면 서운할뻔했다.
단촐한 스탠드 조명아래 술병들 색이 영롱하다. 술잘알이었으면 좋겠다. 맛을 알아야 더 풍부하게 즐기는데 사실 취기만 즐기고 맛은 잘 모름..
신청곡도 받아주신다. 한곡 써내고 오지는 못했다. 아쉽!
아이디어가 좋은 메뉴판. 카운터에 가서 찬찬히 들여다 보고 주문할 수 있다. 흐흣. 처음본 사장님한테 물어서 추천 받았다. 위스키는 1도 모르거든요.. 테레비에서나 가끔 듣던 글렌피딕을 추천해주심. 올리브도 안주로 하나 시켰음.
조폭 우두머리와 졸개들이 작당 모의 할 것만 같은 소파와 테이블. 내가 틀어박힌 자리 옆 공간이다. 혼자와서 앉기엔 양심없으니깐 나는 벽이나 봐야지
혼자 있기에 더없이 좋은 자리. 집에 이런 공간이 있으면 작업이 절로 술술~ 응? 술로 될것 같다.
보드에 꽂힌 사진들 보기만해도 기분이 좋다. 내안의 어떤 조용한 에네르기가 차오르는 말도 안되는 그런 기분. 혼술의 재미는 이런것! (물론 같이 마시는걸 오백배는 더 좋아함)
깜찍한 잔에 나온 글렌피딕12. 올리브 안주 정말... 소스가 좋은건지 공산품인지 뭔지 알수 없지만 너무 반해버린. 안주로 올리브 주문하고 이렇게 만족했던적은 처음.. 내입맛에 맞는건지
살짝 스파이시한데 페어링 미쳣음... 비주얼 자체도 그럴듯해서 나같은 여행자가 가진 약간의 허영심도 채워주었다.
하지만 평소 입맛은 이런 주전부리가 더 맞긴함 ㅋㅋ 이 초콜릿이랑 과자도 야무지게 다 먹고 왔다. 재떨이 같은데 담아주시는데 필줄 모르는 담배 말리는 기분이랄까.
내 입엔 글렌피딕이 좀 달아서, 조금이라도 덜 단 위스키를 추천해달라고 했더니 글렌알라키를 주심. 위스키 자체가 안 달 수는 없는데 이건 그 단 맛 안에 또 다른 풍미가 숨어있다고 하셨다. 무슨 말인지는 입에 넣어보면 알겠는데 글로는 표현 못하겠구만..(사실 기억이 안나..)
조금 더 오랜 시간 머물면서 한 두잔 더 곁들이면 좋았을텐데, 장기간의 스트레스로 간이 이미 혹사를 많이 당한 바 알딸딸해졌으니 나와야했다. 다음날 출근은 해야지 않겠는가 싶어서(참된 알바생이다)
내가 나름 계획..은 아니고 내 뜻대로 짜본 첫 제주 방문이 표선이었는데 평화와 휴식이라는 표선의 이미지가 이 곳 덕에 더 강하게 자리 잡은것 같다. 서울엔 물론 훨씬 좋은 곳이 많겠지만, 사람도 많다는 아주 큰 단점이 있단 말이다. 사람이 많아도 같이 마실 사람은 없는 나로서는 서울의 휘황찬란한 바들이 큰 메리트가 없는걸.. 아무튼 별 이유 없어도 다시 가서 조금 더 오래 있어보고 싶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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